스스로의 세계에 갇힌 날들이 많았습니다.
중하게 여기고 또 그만큼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돌이켜보면 식당을 하였을 때도,
고집이 워낙 강해 혼자 어떻게든
끌고 가려 했던 날들이 많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것보다
어렵더라도 혼자서 하려고 하다 보니,
일은 전혀 진행이 되지 않았지요.
식당을 운영하면서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
매일 밤마다 요리를 만들고 먹고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요리를 해본 적이 없기에
도저히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앞이 캄캄한 날들이었습니다.
그렇게 혼자서 매일 밤 고민하다
더는 안 될 것 같아,
어머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랬더니 혼자 몇 날 며칠 고민하던 것이
너무나도 쉽게 해결되는 것이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은,
그 시절의 도량에 따라
매일 무너지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일이
부끄럽지 않으나, 그 시절에 저는
어디가 모났는지
도움을 청하는 것이
그렇게나 부끄러웠습니다.
마치 제가 능력이
부족한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아마 부족했던 건,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마음이었겠지요.
어느 날은 또, 서점을 둘러보니
고객분들에게 필요한 것보다
제가 놓고싶은 것들 밖에 없다는 것이
눈에 보였습니다.
이래서는 소중한 걸음으로 방문하시는
고객분들이 이곳이 무얼하는 곳인지
알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한 것들 중에는,
제가 그린 그림들도 있었지요.
사실 그림이야, 제게 모두 하나같이
소중하고 또 소중하지만,
그것은 제게만 소중한 것이며
그러한 것들은 혼자 하면 되는 것이지
고객분들을 위해 존재하는 매장에서
해야 할 일은 아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을 따로 보관할 창고도,
공간도 여의치 않았기에
몇 날 며칠 깊게 고민하다
몇몇의 그림을 남기고 모두 버리며
정리 하였습니다.
그림을 정리하려고 마음먹는 일은
진심으로 쓰리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마음을 먹고나니
그것들을 정리하는 그 과정은
너무나도 상쾌하고 개운했습니다.
서점의 문패를 설치하고, 화장실,
계산대 표시 같은
제게는 당연한 것들이지만
고객분들은 모르실 수 있는
표시들을 설치했습니다.
저는 정말로 안락하며
편안한 매장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 많은 그림들을 모두 정리한 뒤
집으로 가는 길, 서점 근처에 있는
식당에서 열심히 일하시는
어머님과 아버님들이 눈에 보였고
그분들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한없이 아름답고
또 대단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런지 이유는 알 수 없으나
저는 그날 제가 마주했던 그 모습들이
여전히 눈에 선명합니다.
저는 지금도 한 사람의 성장은,
지금까지 스스로를 성장시키고 지켜준
그 세계관과 자아를 스스로 깨 낼 때,
그리하여 더 넓은 세계관을 만들고
더 큰 자아를 찾아낸 그 순간
비로소 아주 조금씩 성장한다 믿습니다.
아마 우리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지금까지 자기를 지키고 보호해 준
그 벽을 스스로 깨야 하는 순간들이
수도 없이 오겠지요.
그러한 피폐함을 견뎌내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해내야 할 어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인간이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움' 이란 것은 그러한 피폐함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나아가 세상의 유일한 목적지가 아니라
세상의 또 하나의 이정표가 되어가는 일인 것 같습니다.
사랑받는 편안한 공원을 만들고 싶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무도 쉽게 오지 못하는 벼랑 끝,
멋진 성을 만들었습니다.
그간의 고생과 노력이
너무 아쉽고 또 아쉬워,
멋진 성을 포기하지 못하였는데
제가 떠나자 사람들이 모여들고
그토록 만들고 싶어 했던
편안한 공원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드는 생각은
사람이 일말이라도
어떤 아름다움의 순간을
소유할 수 있는 방법은
그때까지 스스로가 무한히
또 거짓 없이 사랑한
그것을 내려놓는 일인 것 같습니다.
10년, 20년 끈질기게
장사를 해내신 분들은
그동안 얼마나 많은 것들을
내려놓으셨을까 싶습니다.
저는 살다 보면, 또다시
저도 모르는 사이에
제가 만든 세계에 갇히겠지요.
그럴 때마다 불현듯
세상의 끝에 서있는 것 마냥
어딘가 어색한 오만이
눈과 입에 배어있을 겁니다.
그리고 다시 깊게 후회하겠지요.
그래도, 여전히
조금이라도 덜 그러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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